크라우제주의
크라우제주의(Krausism)는 독일의 철학자 카를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크라우스(1781–1832)의 이름을 딴 독트린으로, 교조주의로부터의 관용과 학문의 자유를 옹호한다.
관념론 철학자 중 한 명인 크라우스는 일신교적 단일 하느님(신앙을 통해 이해되는)과 범신론적 혹은 경험론적 세계 이해를 조화시키고자 노력했다. 크라우스에 따르면, 양심을 통해 직관적으로 알려지는 신격은 인격이 아니며(인격은 한계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우주를 그 안에 포함하는 만물(Wesen, 존재)이다. 범재신론으로 알려진 이 우주론과 신의 본성에 관한 이론은 일신교와 범신론의 결합이다. 세계와 인류에 대한 크라우스의 이론은 관념론의 한 형태이다.
스페인 크라우제주의
[편집]크라우제주의는 스페인 왕정복고기에 널리 퍼졌으며, 그곳에서 최대의 실질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는 선구자인 훌리안 산스 델 리오(1814-1869), 프란시스코 히네르 데 로스 리오스(1839-1915)가 이끄는 교육 자유 기관, 그리고 법학자 페데리코 데 카스트로 이 페르난데스의 공헌 덕분이었다.
스페인 크라우제주의는 19세기에 크라우스의 방대한 저술이 출판되면서 뿌리를 내린 문화 운동이었다. 관념론의 한 버전이었던 크라우스의 철학은 고국인 독일에서는 피히테,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그리고 특히 헤겔과 같은 관념론의 주요 인물들의 명성에 가려져 있었다.
1840년경, 훌리안 산스 델 리오를 필두로 한 스페인의 법학자 집단은 당시 유행하던 철학적 개념을 수정하고 확장하기 위해 필요한 재생 과정을 시작하고자 자유주의 전통 내에서 정치적 독트린을 모색하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산스 델 리오의 친구들" 회원이었던 루페르토 나바로 사모라노(1813-1855)는 하인리히 아렌스(1808-1874)의 저서 《자연법 또는 법철학 강요》(파리, 1837)를 번역했다(1841년). 아렌스는 크라우스의 주요 제자 중 한 명이었다. 이 저서에서 아렌스는 법의 기초가 "순응"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이성적인 인간과 인류의 운명이 경건함, 헌신, 그리고 이타주의의 보편적 질서로서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외부 조건의 집합을 의미했다.
아렌스의 법철학의 본질은 "조화로운 합리주의"라는 문구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 개념은 크라우스의 저서 《인류의 이상과 보편적 연방》(1811)의 주요 주제였다.[1][2]
라틴 아메리카의 크라우제주의
[편집]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은 주로 스페인에서 공부하거나 망명 생활을 하면서 크라우스의 독트린을 접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산스 델 리오에게 철학을 배운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에우헤니오 마리아 데 호스토스이다.
데 호스토스의 소설 《바욘을 통해 본 에우헤니오 마리아 데 호스토스의 내적 순례》[3]는 일기 형식의 낭만주의 소설로, 통합된 사회 철학에 대한 그의 꿈을 개략적으로 보여준다. 데 호스토스는 여성의 해방을 인권으로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더 큰 이익과 사회 조직을 위한 실용적인 메커니즘으로 지지했다.
쿠바의 작가이자 국민 영웅인 호세 마르티는 강제 노동을 동반한 정치적 투옥을 겪었으나 탈옥하여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그는 식민지 체제의 대서양 횡단 군사적 잔혹함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 또한 법학을 공부하면서 크라우스의 철학과 독트린을 접했다.
크라우제주의의 이 두 주창자인 마르티와 데 호스토스는 개인적인 강조점과 의제는 매우 달랐지만, 개인이 사회 개선을 위해 행동할 개인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크라우제주의의 전파를 크게 촉진했다. 마르티와 데 호스토스의 저술과 활동은 "반제국주의 민족주의"로 알려진 운동의 부상에 기여했다. 후에 라파엘 쿠에바스 몰리나 박사(1954년생)에 의해 장려되고 지속된 이 운동은 니카라과에 대한 미국의 점령에 맞선 아우구스토 세사르 산디노(1895-1934)의 반란과 함께 시작되었다.
데 호스토스와 마르티는 쿠바와 푸에르토리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반식민 투쟁의 영웅이자 동지가 되었다. 두 사람 모두 프리메이슨에 입단했는데, 이는 크라우제주의 확산에 있어서 프리메이슨의 영향력을 확인시켜 준다. 이러한 연결 고리는 크라우제주의 자유주의 교육자들의 이주를 지원하는 일종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했으며, 이들은 식민지 스페인으로부터의 자치를 모색하던 라틴 아메리카의 자유주의 지도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후의 크라우제주의자들로는 이폴리토 이리고옌, 호세 바틀레 이 오르도녜스, 알폰소 레예스, 호세 엔리케 로도, 알레한드로 데우스아, 아르투로 움베르토 이야, 알레한드로 콘 등이 있다. 예를 들어, 레예스는 마드리드의 레시덴시아 데 에스투디안테스에서 강연을 했고, 로도는 레오폴도 알라스와의 방대한 서신 교환을 통해 크라우제주의를 통한 미학적 관심을 고취했다.
각주
[편집]- ↑ Karl Christian Friedrich Krause (2012년 8월 1일). 《The Ideal of Humanity and Universal Federation》. Bibliolife LLC/Forgotten Books (USA). ASIN B008TCCEKU.
- ↑ Karl Christian Friedrich Krause (1900). W. Hastie D.D. (편집). “The Ideal of Humanity and Universal Federation”. T. & T. Clark (Edinburgh). 2014년 10월 5일에 확인함.
- ↑ Eugenio Maria de Hostas (2006년 11월 1일). de Hildreth N Waltzer (편집). 《The Inner Pilgrimage of Eugenio Mara de Hostos as Seen Through Bayón》. Centro Pro Hostos de Nueva York.
외부 링크
[편집]- 호세 루이스 고메스 마르티네스, "El krausismo en el mundo Hispano"
- Arturo Ardao, Espiritualismo y positivismo en el Uruguay: Filosofías universitarias de la segunda mitad del siglo XIX (1950).
- 호세 루이스 고메스 마르티네스, “Pensamiento hispanoamericano: el caso del krausismo”, Actas del II Seminario de Historia de la Filosofía Española, ed. Antonio Heredia Soriano (1982), pp. 155-172.
- Fundación Friedrich Ebert, Instituto Fe y Secularidad, El krausismo y su influencia en América Latina (1989).
- 호세 루이스 고메스 마르티네스, “Pensamiento hispanoamericano: el caso del krausismo”, Actas del II Seminario de Historia de la Filosofía Española, ed. Antonio Heredia Soriano (1982), pp. 155-172.
- Arturo Andrés Roig, Los krausistas argentinos (1969).
- Otto Carlos Stoetzer, Karl Christian Friedrich Krause and his influence in the Hispanic World. (1998) (ISBN 3-412-13597-6)
- Friedrich-Ebert-Stiftung, El krausismo y su influencia en América Latina (1989).
- Thomas Ward, La teoría literaria: romanticismo, krausismo y modernismo ante la globalización industrial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