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빅터 애플턴
| 에드워드 빅터 애플턴 Edward Victor Appleton | |
|---|---|
에드워드 빅터 애플턴 (1947년) | |
| 출생 | 1892년 9월 6일 잉글랜드 웨스트요크셔주 브래드퍼드 |
| 사망 | 1965년 4월 21일(72세)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
| 출신 학교 | 케임브리지 대학교 |
| 주요 업적 | 전리층, 애플턴 층 |
| 수상 | 노벨 물리학상 (1947) |
| 분야 | 물리학 |
| 소속 |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 런던 에든버러 대학교 |
| 박사 지도교수 | 조지프 존 톰슨 어니스트 러더퍼드 |
에드워드 빅터 애플턴 경(Sir Edward Victor Appleton, GBE, KCB, FRS, 1892년 9월 6일 ~ 1965년 4월 21일)은 영국의 물리학자이다. 전리층에 관한 지식을 발전시켜 레이다와 단파 라디오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194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애플턴은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왕립공병대 소위로 임관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왕립공병대 신호부대의 교관으로 근무하고 서부 전선에도 잠시 복무했으며, 독일군의 열전자관을 가져와 연구에 활용했다. 1924년 킹스 칼리지 런던의 휘트스톤 물리학 교수가 되었고 1927년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36년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잭슨 자연철학 교수가 되었고,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사망한 뒤 캐번디시 연구소 임시 소장을 맡았다. 1939년에는 영국 과학·산업연구부 사무차관이 되어 전쟁에 과학 지식을 동원했으며, 전리층 연구의 연장선에서 레이다 개발과 튜브 얼로이스 핵무기 계획에도 관여했다. 1948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에든버러 대학교 학장 겸 부총장을 지냈다.
애플턴은 1926년 전리층의 반사 특성을 연구해 오늘날 애플턴층으로 불리는 전리층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 연구는 장거리 무선 통신의 이해를 넓혔고, 제2차 세계 대전 중 레이다 개발에도 기초가 되었다.
애플턴은 낮과 밤에 중파 무선 신호의 세기가 달라지는 현상을 전리층에서 반사된 전파의 간섭으로 설명했다. 케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와 라디오 연구위원회의 관측소를 이용해 반사층의 높이를 측정했고, 1926년 실험을 통해 케넬리–헤비사이드층보다 높은 전리층을 확인했다. 이 층은 오늘날 애플턴층으로 불리며 단파 통신과 전리층 물리학의 핵심 개념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애플턴은 과학·산업연구부 사무차관으로서 레이다와 고주파 방향탐지 연구를 조정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에든버러 대학교 학장 겸 부총장으로 대학 연구 체계를 정비했으며, 전리층 연구와 전파 기술에 대한 공로로 194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서훈
[편집]- 1941년 바스 훈장 2등급(KCB, 작위급 훈장)[1]
- 1946년 대영 제국 훈장 1등급(GBE, 작위급 훈장)[2]
참고 문헌
[편집]참고 자료
[편집]각주
[편집]- ↑ “Supplement to The London Gazette: 1941 New Year Honours” (영어). 《The Gazette》 (런던) (35029): 4. 1940년 12월 31일. 2016년 10월 10일에 확인함.
- ↑ “Supplement to The London Gazette: 1946 New Year Honours” (영어). 《The Gazette》 (런던) (37407): 49. 1945년 12월 28일. 2016년 10월 10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편집]- (영어) 노벨재단 - 애플턴 전기
- (영어) "Sir Edward Victor Appleton (1892 - 1965)" -BBC 사이트의 전기
- “Edward Victor Appleton” (영어). 《수학 계보 프로젝트》. 미국 수학회.